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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utnik | written on 2013.06.05 18:32:05 | 1751 reads

Gongan2013R.jpg


글자 디자이너 김태헌이

지난 1월 서교동 땡스북스에서 공간체 전시를 준비하며

홈페이지 http://www.gulza.com/ 에 남겼던 글.


2013. 1. 2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둘 이상 결합(조합)하여 만드는 글자입니다. 가로로 결합하고, 세로로 결합합니다. 그래서 가로로 나열할 수 있고, 세로로 나열할 수 있는 글자입니다. 저는 자음과 모음의 ‘규칙’적인 ‘결합’이 한글의 조형적인 특징이라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음과 모음의 정확한 틀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이 한글의 특징인 ‘규칙’을 보여주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틀 위에 중력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결합’해 나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력은 자음과 모음이 모이는 힘을 말합니다. 가로로 모이든, 세로로 모이든, 2개가모이든 5개가 모이든 동일한 힘. 그것을 중력이라 느꼈고,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틀과 중력, 규칙과 결합. 이들을 활용해 만든 글자가 바로 <공간>입니다.



2012. 12. 25

한글은 기본적으로 결합하는 글자입니다. 가로 혹은 세로로 결합하고, 가로로 혹은 세로로 나열할 수 있습니다. 가로로 나열하면 가로획들의 균형을, 세로로 나열하면 세로획들의 균형을 느낄 수 있지요. 또한 한글은 태생적으로 논리적입니다. 자소부터 결합-조판에 이르기까지 상/하, 좌/우 대칭 형태를 띠는데 그 방식에는 정확한 규칙이 있습니다. 가령 한자도 결합을 하지만 규칙성은 없습니다. 그냥 그림인 거죠.

규칙에 의해 논리적으로 결합한다면 모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레고와 같이.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법칙과 예외’라는 상황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외가 많아지는 순간, 모듈과 법칙은 의미를 잃겠지요. 어떤 틀 속에 자음(혹은 모음)을 집어넣으려면 자음(혹은 모음) 형태의 속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자음과 모음을 분해하여 속성을 부여한 뒤, 일일이 결합해보고 검증의 과정을 거쳐 그룹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결과 거의 모든 자소, 그룹 간 규칙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자소 간 존재하는 일정한 공간을 보며, 한글에 담긴 중력과 우주의 법칙에 대해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자음과 모음을 물료라고 표현해봅시다. 물료들은 서로 모이며 변형되어 제각각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물료와 공간의 변형된 형태를 통해 중앙으로 모이는 힘, 즉 증력을 가늠할 수 있겠지요. 하나의 두께, 나아가 모든 패밀리는 동일한 중력을 가져야 하며, 그 힘이 균일치 못하면 시각적으로 불균형해지고 그룹을 확장할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한글은 어떻든 중앙을 중심으로 모이는데, 이때 정확한 중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야 두 개가 모이든, 여섯 개가 모이든 서로 어울려서 하나의 은하계 안에 존재하게 되겠지요.

물론 이런 식의 접근은 저의 방식입니다. 한글에 관한 규칙은 엄청나게 많고, 이렇게 만들어진 한글 디자인도 아직은 없습니다. 이게 정답이라거나, 멋지다거나, 우리 민족의 우수성 같은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저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논리는 감각 위에 있을 수 없으며, 논리적이라 하여 어색함을 이해하라는 건 억지 강요일 뿐이니까요. 본래 논리라는 것은 감각(혹은 실험)으로 증명되어야 진짜고, 그제야 법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저는 남들이 다 아는 우주, 행성들 간 물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주는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무슨 질서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그 의문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글자 ‘공간’을 통해 공간은 여백이 아님을, 주체의 나머지가 아니라 주체를 증명해주는 보이지 않는 도구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 공간(우주)를 이해하려는 것이 물리학의 최종 지향점이듯, 본질의 이해를 통해 한글 역시 새로움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____________



한글제작을 우주물리학에 빗대 말하는 저 멋스러움.

저 정도의 철학을 갖고 디자인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점, 부러울 따름이다. 


_dek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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